[싱가포르] 스타트업 천국! 싱가포르① 스타트업 심장 '블록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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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인회 작성일14-10-09 16:33조회11,5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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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창이(Changi)공항에서 시내 중심부를 향해 30여 분 달리면 도착하는 곳, 블록71(Blk71). 의류 회사들이 입주해 있던 6층짜리 이 건물은 요즘 싱가포르 스타트업의 심장이 됐다. 영국·인도·태국 등 전 세계에서 온 벤처기업, 캐피털리스트, 창업보육센터 등 100여 개 업체가 상주하면서 활발하게 교류한다. 블록71은 동남아시아의 스타트업 허브로 변모하려는 싱가포르의 현주소를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9월 4일 오후 3시, 블록71 2층 강의실에 젊은이 수십 명이 커피 한 잔씩을 들고 빼곡히 모여 있다. 창업보육센터 플러그인앳블록71(Plug-in@Blk71)이 마련한 ‘커피챗’ 강연을 듣기 위해서다. 이번 강연의 강사는 싱가포르 최대 중고차 판매 사이트 ‘sgCarMart’의 조엘 푸 전략이사다. 푸는 sgCarMart 설립자로, 창업 8년 만에 거대 미디어그룹 SPH에 사이트를 6000만 싱가포르달러(약 500억원)에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강연이 끝난 후에도 스타트업들은 푸 주위를 맴돌면서 질문하고 조언을 들으려 애썼다. 질의응답이 끝난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얘기하는 등 정보를 교환했다.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갈망하는 ‘네트워킹’이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펼쳐졌다.
기업가정신과 투자자의 만남
플러그인앳블록71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성장시키는 장소이자 프로그램이다. 싱가포르국립대 기업가정신(이하 NUS 엔터프라이즈)에서 관리, 운영한다. ‘플러그’는 싱가포르 미디어개발청(MDA)과 싱텔이노브8(SingTel Innov8)벤처스가 참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1년 문을 연 후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꾸준히 아이디어를 교류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플러그인앳블록71은 20여 개 국에서 온 200여 개 스타트업들을 2단계로 나눠 지원하고 있다. 1단계는 아이디어 수준의 스타트업이 대상이다. 책상 한 대와 무료 인터넷, 회의실, 사무기기 등을 24시간 제공한다. 싱텔이노8벤처스가 벽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어 언제든지 투자 자문을 하고 사업 전략에 관한 조언을 받을 수 있다. 현재 30개의 스타트업이 1단계 공간을 메우고 있다. 마냥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NUS 엔터프라이즈는 6개월마다 한 번 스타트업 현황을 점검해 장기간 비워 두거나 진전 사항이 없을 경우 퇴출시킨다.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투자를 받거나 매출이 발생하면 2단계 지원을 받는다. 독립된 공간을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것이다. 2년 정도 상주할 수 있다. 플러그인앳블록71은 주당 3~5가지 이벤트도 진행한다. 멘토링과 비즈니스 컨설팅, 벤처 투자를 얻기 위한 피칭세션, 각종 세미나와 네트워킹 모임 등을 주기별로 개최한다. 2단계 지원을 받으면서 커플 매칭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고 있는 아밀리아 첸은 “플러그인앳블록71의 지원 덕분에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JFDI, 40개 스타트업 키워
블록71을 유명하게 만든 또 다른 존재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JFDI(The Joyful Frog Digital Incubator)다. JFDI 역시 스타트업과 관련된 멤버, 액셀러레이터, 투자자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2010년에 문을 연 JFDI는 지금까지 40개의 스타트업을 키워 냈다.
JFDI는 미디어 회사와 투자회사 등의 운영 경험이 있는 영국 출신 휴 메이슨과 싱가포르의 기업가 웡멍웽이 공동으로 창업했다. 두 사람이 만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JFDI.Asia는 동남아시아에서 체계가 가장 탄탄하고 효과 높은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 프로그램인 ‘100일 캠프’는 15개 안팎의 스타트업을 모아 놓고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것에 대해 100일간 치열하게 토론한다. 이 프로그램을 끝낸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 비율은 60% 안팎으로, 다른 액셀러레이터의 투자 유치 성과보다 월등히 높다.
블록71에서 만난 웡멍웽은 회사의 마스코트인 개구리 ‘스무치’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다. ‘실리콘밸리는 장소가 아니다. 아이디어다’라고 적힌 간판도 눈에 띈다. JFDI에서 만난 카멘 베니테즈는 JFDI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1기생으로, 현재 페치플러스(www.fetchplus.com)를 운영하고 있다. 베니테즈는 JFDI가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가운데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이유는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소비자를 먼저 찾고 그들이 뭘 원하는지 함께 고민해 주기 때문”이다. JFDI는 올해 한국의 은행권청년창업재단과 전략 협력 관계를 맺었으며, Global Office@JFDI Asia를 진행하기도 했다.
블록71 건물 5층에는 3D 프린터 등 디지털 장비로 시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공작소 ‘팹랩’이 있다. 플러그인앳블록71과 JFDI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액셀러레이터 및 벤처투자자들의 교류가 빈번하다. 스타트업들은 플러그인앳블록71의 프로그램이 적합하지 않다고 느끼면 언제든 다른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
블록71의 성공에 고무된 싱가포르 정부는 바로 옆 블록73, 79로 스타트업 규모를 확장하고 있다. 블록71이 공장형 빌딩을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반면에 블록73은 아예 스타트업을 위한 최신 설비로 신축되고 있다. 올 겨울 완공 예정인 블록73은 새로운 컨셉트의 스타트업 요람이 될 전망이다.
블록71에서 만난 싱가포르 기업인 제프 쉬는 이곳을 통해 약 8000억원 규모의 투자자금이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 몰려
홍콩 소재 ‘아시안 벤처캐피털 저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캐피털은 싱가포르 IT 기업들에 총 17억 1000만 달러(약 1조 7000억원)를 투자했다. 이 액수는 중국에 투자된 34억 6000만 달러보다 적지만 일본, 한국, 홍콩보다는 많다. 정부 자금을 포함해 싱가포르 IT기업에 투자된 금액은 지난해 급증, 아시아 투자액에서 19%를 차지했다. 2011년 0.3%(2790만 달러)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최근 몇 년 간 싱가포르 정부는 과학 연구개발(R&D)에 책정한 160억 싱가포르달러 가운데 약 1억 싱가포르달러(1044억원)를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안드레센 호로비츠를 비롯한 유명 미국 벤처캐피털 회사들도 싱가포르의 스타트업에 자금을 제공했다. 이런 투자 덕분에 현지 IT기업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2011년 설립된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 ‘레드마트’는 미국과 일본의 투자 지원에 힘입어 최근 냉장 시설을 갖춘 물류창고를 마련하는 등 외형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 전자상거래 업체 라쿠텐이 2억 달러에 인수한 비디오 사이트 ‘비키’의 사례 등은 싱가포르 스타트업이 대형 IT기업에 인수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 노스’와 ‘크리에이트’에 담긴 야망
블록71의 성공과 현지 IT기업들의 투자 활기는 싱가포르 정부의 ‘창업국가 전략’의 결실이다. 인구 540만 명의 싱가포르는 좁은 면적과 부족한 자원을 이겨 내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해외 우수 기업과 인력을 적극 유치해 전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싱가포르를 통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허브화’ 전략이다. 이는 싱가포르를 R&D 도시로 바꾸는 ‘원 노스 프로젝트’에 잘 나타난다.
‘원 노스 프로젝트’는 북위 1도 지점에 모든 바이오메디컬, 정보통신기술(ICT), 미디어 등 주요 성장 동력 산업 시설을 집중시키는 계획을 말한다. 단순한 연구시설 몇 개를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연구 인력과 그 가족을 위한 아파트, 호텔, 기타 상업시설을 하나로 연결하는 ‘과학촌’을 이루는 것이다. 현재 바이오폴리스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IT 융합산업 중심의 연구단지 퓨전폴리스(Fusinopolis), 방송 등 미디어 산업 중심의 미디어폴리스(Mediapolis) 등이 2020년 완공을 목표로 구축되고 있다.
국립연구재단(NRF)이 입주해 있는 CREATE(Campus for Research Excellence And Technological Enterprise)도 주목할 부분이다. CREATE에는 글로벌 대학들과 해외 유학생, 교수, 연구진으로 넘쳐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비롯해 스탠퍼드대, 베이징대(중국), 뮌헨대(독일), 테크니온공대(이스라엘) 등 전 세계 우수 대학들이 NUS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말에는 예일대(미국) 부설연구소도 입주 예정이다.
싱가포르에 해외 우수 대학 연구소 유치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시장에 나오는 혁신 기술들이 대학 연구소에서 먼저 발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가 없었다면 실리콘밸리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란 말이 있듯 좋은 대학의 연구소는 좋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드는 토대가 된다. 셰럴 로(Cheryl Loh) NRF 홍보담당자는 “최고 기술을 갖춘 대학 연구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일”이라며 CREATE에 강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기업가정신 확산해 창업 유도
싱가포르 정부는 ‘연구→창업→투자→상장 및 대기업으로 도약→재투자’로 이어지는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외 인재들이 자연스레 싱가포르에 남아 스타트업을 하고 경제 발전에 기여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 같은 바람이 현실로 이어지려면 물질 환경만으론 부족하다. 그 복안이 기업가정신이다.
싱가포르국립대를 비롯해 많은 대학이 최근 몇 년 새 ‘기업가정신센터’를 설립하고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기업가정신 교육의 핵심은 새로운 기회를 지속 발견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사회·경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NUS 엔터프라이즈 CEO 릴리 찬 박사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싱가포르 경제의 미래는 없다”면서 “이런 점에서 청년들에게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촉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NUS 엔터프라이즈의 대표 프로그램은 NOC(NUS Overseas College)와 ILO(Industrial Life-zone Office)다. NOC는 중국의 상하이와 베이징, 미국 실리콘밸리, 스웨덴 스톡홀름과 인도 및 이스라엘 등에 있는 싱가포르국립대 해외 자매학교에서 1년 동안 인턴으로 일하고 월급을 받는다. 인도 출신의 잇샨 아그라반은 NOC를 경험한 후 싱가포르 내 창업을 결심했다. 아그라반은 틈나는 대로 대학 후배들에게도 기업가정신을 강조한다. ILO는 최근 특허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멘토가 펀딩도 함께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시장에 진입하는 방법을 모르는 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펀딩 멘토’를 붙여 준다. 학생들이 창업해 성공하면 대학교에서는 멘토에게 인센티브도 지급한다. 각고의 노력 덕분에 이제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려는 서구의 스타트업들은 싱가포르를 전초기지로 생각한다. 한국, 일본, 대만 등의 스타트업들 역시 세계 진출의 교두보로 싱가포르를 택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스타트업 전략은 어느 정도 결실을 맺은 듯 보인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치솟는 물가 부담으로 싱가포르를 떠나는 대학과 연구소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패권을 넘보는 중국 베이징 중관춘과의 인재 영입 경쟁도 쉽지 않다. 싱가포르가 기업가정신을 더 강조하고 R&D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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