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행보다 힘센 추억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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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인회 작성일13-11-28 11:03조회7,2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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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당·태극당에서 ‘서울연인’까지 세대를 가로지르는 단팥빵 매력 탐구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지하철 공덕역에 하차하는 이들은 재미난 풍경을 출근길에 목격한다. 33㎡(10평)도 안 돼 보이는 작은 빵가게 앞에 선 긴 줄과 코털을 쿡쿡 찌르는,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맛깔스러운 냄새다. ‘서울연인 단팥빵’ 공덕역점의 빵 때문이다. 간판처럼 ‘단팥빵’이 대표 상품이다. 한창 인기몰이 중인 <응답하라 1994>처럼 복고바람이 빵집에도 분다. 단팥빵은 프랑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출신의 파티시에가 보면 단순한 재료구성에 코웃음칠 만도 한데 인기다. 고작 반죽한 밀가루 덩어리 사이에 달큰한 팥소가 다지만 아련한 추억을 동반하기에 특별하다. 식문화평론가인 김학민(68)씨와 추억의 빵인 단팥빵 여행길에 떠났다.
“우리나라는 떡 문화죠, 빵은 근대식품입니다.” 김씨가 말문을 연다. 빵은 구한말 선교사들이 들여온 먹을거리라고 한다. “빵은 구워야 하니 불이 필요했어요. 오븐이나 그릴이 없어서 숯불에 구웠죠.” 둥글게 크게 빚어 구운 빵은 당시 한국인들의 눈에 낯설고 우스워 보였다. 마치 ‘소의 불알’처럼 보여 ‘우랑떡’이라 불렀다고 한다. 팥소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팥소가 든 찹쌀떡(모찌)을 들고 왔죠. 우리의 팥 요리라고 해봐야 팥죽이나 시루떡 정도였어요. 소를 넣어 먹는 음식도 송편이나 만두 정도였죠.” 팥소(앙꼬)가 든 찹쌀떡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설탕이 귀하던 일제강점기에 다디단 팥소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60년대 밀가루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빵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 동네 빵집이 있긴 했으나 그리 수가 많지는 않았어요.” 김씨는 본격적인 단팥빵의 탄생을 분식장려운동이 펼쳐졌던 60년대 중반으로 본다.
1964년 농수산부는 모든 음식점에 대해 25% 이상의 보리쌀이나 면류를 혼합해 팔고,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은 ‘혼분식의 날’로 정해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게 규제했다. 박정희 정권의 분식장려운동의 시작이었다. “당시 영양학자들은 쌀에 비해 밀가루가 영양소가 많다는 둥, 당시 (정부의) 논리에 복무하는 얘기를 많이 했죠. 하지만 쌀에 비해 영양소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가 읊은 단팥빵의 역사는 그리스로마 신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70년대 단팥빵의 인기를 꺾은 게 크림빵이었죠. 잘라서 먹으면 크림이 많은 쪽을 서로 먹겠다고 싸움이 날 정도였어요.”
맛도 세월 따라 달라졌을까? “그때도 설탕 가격은 싸지 않았죠. 그래서 초창기 단팥빵은 설탕이 적게 들어가서 팥 특유의 원초적인 맛이 강했어요.” 1946년 문 연 ‘태극당’부터 맛을 봤다. 태극당은 고색창연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다. 70년대 종로나 혜화 등에 10여개 직영점이 있었으나 현재는 한 곳만 남았다.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였던 태극당은 주크박스가 설치돼 있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핫 플레이스’였다. 80년대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몰려들면서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지난 7월에는 창업주인 신창근씨가 93세로 별세했다. 역사의 한 장이 넘어갔다.
“옛날 포장지 그대로네요. ‘등록상표’라고 적은 글자는 60년대식이에요.” 20대에 태극당 빵을 즐긴 김씨는 “그 시절과 비슷한 고지식한 맛이다”고 평한다.
단팥빵 하면 1945년 문 열어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알려진 전북 군산 ‘이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양재동 인근 서초동에 분점이 있어 서울시민들도 손쉽게 맛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다른 이름이다. ‘햇쌀마루’. 뜻밖에도 5년 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인기가 없었으나 작년부터 이성당 분점이라고 알려지면서 단팥빵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 68년째 가족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이성당은 현재 창업주의 며느리인 김현주씨가 사장이다. ‘햇쌀마루’는 28살인 그의 딸, 조윤경씨가 맡아 운영한다. 창업 초기와 달리 단팥빵은 밀가루가 아니라 쌀가루로 만든다. 현주씨는 “원래 쌀가루 가공업체인 ‘햇쌀마루’를 운영했었어요. 건강에 좋은 쌀빵을 홍보하고 싶어서 서울은 ‘햇쌀마루’란 이름을 달았어요”라고 한다. 쌀가루로 빵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반죽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데, 글루텐을 넣어 문제점을 해결했다. 조씨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에 뛰어들었다. “할머니와 같이 살았어요.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어릴 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빵을 만드시는 할머니를 지켜봤지요. 빵 만드는 게 재밌어 보였어요.” 조씨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는다. 김학민씨는 한입 베어 물고 “팥소가 아주 많네요. 맛있습니다. 빵보다는 소에 중점을 두었군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끌어낼 거 같네요”라고 ‘햇쌀마루’의 단팥빵을 평가한다. 단팥빵은 팥소의 질이 빵 맛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현주씨는 팥 삶는 데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한다.
‘서울연인 단팥빵’은 모양새부터가 다르다. 크기가 반절이다. “옛날식 단팥빵은 앙꼬의 알갱이가 살아 있는 게 많죠. 이것은 다 으깨 아주 부드럽군요. 맛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맞게 새롭게 단팥빵을 해석하고 이미지를 만들었네요.” 김학민씨의 평이다. ‘서울연인 단팥빵’은 올해 5월 서울역점을 시작으로 홍대점, 공덕역점을 연이어 열었다. 사장 민은희씨는 제과제빵 전문가는 아니지만 2002년부터 백화점 식품코너를 운영했었다. “서울역점은 운 좋게 입찰을 받았죠. 차별화해야겠다 생각하고 경영자로서 최고의 재료만 쓰자 결정했어요.” 유기농 밀가루, 천일염, 천연버터, 천연발효 효모가 재료고, 천연발효 효모라도 그 사용량을 최소화시켰다고 한다. 반죽도 매장에서 한다. 저녁 8시면 빵이 떨어져 없을 정도로 요즘 인기다. “역사는 행선지를 향해 빠르게 가는 고객들이 대부분이죠. 그들의 발걸음을 붙잡으려면 맛이 확실히 달라야 합니다. 빵 포장지나 간판 디자인까지 신경 쓴 이유기도 하죠.” 민 사장의 말이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웨스틴조선호텔과 롯데호텔의 단팥빵도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빵이다. 깨와 호두를 빵에 넣어 차별화를 뒀다. 김학민씨는 “조선호텔은 서울연인 단팥빵보다는 태극당에 가깝네요. 호두를 넣어 씹히는 맛도 있군요. 롯데호텔도 호두가 있어 달콤하고 고소한 맛을 가미했군요. 두 곳 다 전통을 업그레이드시켰어요”라고 평가한다. 5, 60대 중장년층이 꾸준히 찾아 지난 수십년간 호텔 베이커리의 1등 효자 상품이라고 한다. 비싼 식재료를 쓰고 화려하게 포장한 빵들을 따돌리고 있다. 웨스틴조선호텔은 단팥빵 때문에 투숙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다. 하루 100개 이상 만드는 롯데호텔의 단팥빵은 막걸리를 사용한 효모를 쓰고 웨스틴조선호텔은 빵 반죽을 2번 이상 해 쫄깃한 식감을 넣었다.
“빵은 어려웠던 시절의 로망이었죠. 지금도 기억납니다. 학창 시절 몇 개까지 먹을 수 있나 하는 빵 내기를 하는 친구도 많았어요. 맛난 주전부리 하면 빵이었고, 그중에 단팥빵이 최고였죠.” 김학민씨의 마지막 회고담이다. 우리 기억의 끝자락에는 달콤한 단팥빵이 있었다.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지하철 공덕역에 하차하는 이들은 재미난 풍경을 출근길에 목격한다. 33㎡(10평)도 안 돼 보이는 작은 빵가게 앞에 선 긴 줄과 코털을 쿡쿡 찌르는,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맛깔스러운 냄새다. ‘서울연인 단팥빵’ 공덕역점의 빵 때문이다. 간판처럼 ‘단팥빵’이 대표 상품이다. 한창 인기몰이 중인 <응답하라 1994>처럼 복고바람이 빵집에도 분다. 단팥빵은 프랑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출신의 파티시에가 보면 단순한 재료구성에 코웃음칠 만도 한데 인기다. 고작 반죽한 밀가루 덩어리 사이에 달큰한 팥소가 다지만 아련한 추억을 동반하기에 특별하다. 식문화평론가인 김학민(68)씨와 추억의 빵인 단팥빵 여행길에 떠났다.
“우리나라는 떡 문화죠, 빵은 근대식품입니다.” 김씨가 말문을 연다. 빵은 구한말 선교사들이 들여온 먹을거리라고 한다. “빵은 구워야 하니 불이 필요했어요. 오븐이나 그릴이 없어서 숯불에 구웠죠.” 둥글게 크게 빚어 구운 빵은 당시 한국인들의 눈에 낯설고 우스워 보였다. 마치 ‘소의 불알’처럼 보여 ‘우랑떡’이라 불렀다고 한다. 팥소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팥소가 든 찹쌀떡(모찌)을 들고 왔죠. 우리의 팥 요리라고 해봐야 팥죽이나 시루떡 정도였어요. 소를 넣어 먹는 음식도 송편이나 만두 정도였죠.” 팥소(앙꼬)가 든 찹쌀떡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설탕이 귀하던 일제강점기에 다디단 팥소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60년대 밀가루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빵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 동네 빵집이 있긴 했으나 그리 수가 많지는 않았어요.” 김씨는 본격적인 단팥빵의 탄생을 분식장려운동이 펼쳐졌던 60년대 중반으로 본다.
1964년 농수산부는 모든 음식점에 대해 25% 이상의 보리쌀이나 면류를 혼합해 팔고,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은 ‘혼분식의 날’로 정해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게 규제했다. 박정희 정권의 분식장려운동의 시작이었다. “당시 영양학자들은 쌀에 비해 밀가루가 영양소가 많다는 둥, 당시 (정부의) 논리에 복무하는 얘기를 많이 했죠. 하지만 쌀에 비해 영양소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가 읊은 단팥빵의 역사는 그리스로마 신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70년대 단팥빵의 인기를 꺾은 게 크림빵이었죠. 잘라서 먹으면 크림이 많은 쪽을 서로 먹겠다고 싸움이 날 정도였어요.”
맛도 세월 따라 달라졌을까? “그때도 설탕 가격은 싸지 않았죠. 그래서 초창기 단팥빵은 설탕이 적게 들어가서 팥 특유의 원초적인 맛이 강했어요.” 1946년 문 연 ‘태극당’부터 맛을 봤다. 태극당은 고색창연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다. 70년대 종로나 혜화 등에 10여개 직영점이 있었으나 현재는 한 곳만 남았다.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였던 태극당은 주크박스가 설치돼 있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핫 플레이스’였다. 80년대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몰려들면서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지난 7월에는 창업주인 신창근씨가 93세로 별세했다. 역사의 한 장이 넘어갔다.
“옛날 포장지 그대로네요. ‘등록상표’라고 적은 글자는 60년대식이에요.” 20대에 태극당 빵을 즐긴 김씨는 “그 시절과 비슷한 고지식한 맛이다”고 평한다.
단팥빵 하면 1945년 문 열어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알려진 전북 군산 ‘이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양재동 인근 서초동에 분점이 있어 서울시민들도 손쉽게 맛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다른 이름이다. ‘햇쌀마루’. 뜻밖에도 5년 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인기가 없었으나 작년부터 이성당 분점이라고 알려지면서 단팥빵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 68년째 가족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이성당은 현재 창업주의 며느리인 김현주씨가 사장이다. ‘햇쌀마루’는 28살인 그의 딸, 조윤경씨가 맡아 운영한다. 창업 초기와 달리 단팥빵은 밀가루가 아니라 쌀가루로 만든다. 현주씨는 “원래 쌀가루 가공업체인 ‘햇쌀마루’를 운영했었어요. 건강에 좋은 쌀빵을 홍보하고 싶어서 서울은 ‘햇쌀마루’란 이름을 달았어요”라고 한다. 쌀가루로 빵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반죽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데, 글루텐을 넣어 문제점을 해결했다. 조씨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에 뛰어들었다. “할머니와 같이 살았어요.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어릴 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빵을 만드시는 할머니를 지켜봤지요. 빵 만드는 게 재밌어 보였어요.” 조씨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는다. 김학민씨는 한입 베어 물고 “팥소가 아주 많네요. 맛있습니다. 빵보다는 소에 중점을 두었군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끌어낼 거 같네요”라고 ‘햇쌀마루’의 단팥빵을 평가한다. 단팥빵은 팥소의 질이 빵 맛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현주씨는 팥 삶는 데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한다.
‘서울연인 단팥빵’은 모양새부터가 다르다. 크기가 반절이다. “옛날식 단팥빵은 앙꼬의 알갱이가 살아 있는 게 많죠. 이것은 다 으깨 아주 부드럽군요. 맛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맞게 새롭게 단팥빵을 해석하고 이미지를 만들었네요.” 김학민씨의 평이다. ‘서울연인 단팥빵’은 올해 5월 서울역점을 시작으로 홍대점, 공덕역점을 연이어 열었다. 사장 민은희씨는 제과제빵 전문가는 아니지만 2002년부터 백화점 식품코너를 운영했었다. “서울역점은 운 좋게 입찰을 받았죠. 차별화해야겠다 생각하고 경영자로서 최고의 재료만 쓰자 결정했어요.” 유기농 밀가루, 천일염, 천연버터, 천연발효 효모가 재료고, 천연발효 효모라도 그 사용량을 최소화시켰다고 한다. 반죽도 매장에서 한다. 저녁 8시면 빵이 떨어져 없을 정도로 요즘 인기다. “역사는 행선지를 향해 빠르게 가는 고객들이 대부분이죠. 그들의 발걸음을 붙잡으려면 맛이 확실히 달라야 합니다. 빵 포장지나 간판 디자인까지 신경 쓴 이유기도 하죠.” 민 사장의 말이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웨스틴조선호텔과 롯데호텔의 단팥빵도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빵이다. 깨와 호두를 빵에 넣어 차별화를 뒀다. 김학민씨는 “조선호텔은 서울연인 단팥빵보다는 태극당에 가깝네요. 호두를 넣어 씹히는 맛도 있군요. 롯데호텔도 호두가 있어 달콤하고 고소한 맛을 가미했군요. 두 곳 다 전통을 업그레이드시켰어요”라고 평가한다. 5, 60대 중장년층이 꾸준히 찾아 지난 수십년간 호텔 베이커리의 1등 효자 상품이라고 한다. 비싼 식재료를 쓰고 화려하게 포장한 빵들을 따돌리고 있다. 웨스틴조선호텔은 단팥빵 때문에 투숙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다. 하루 100개 이상 만드는 롯데호텔의 단팥빵은 막걸리를 사용한 효모를 쓰고 웨스틴조선호텔은 빵 반죽을 2번 이상 해 쫄깃한 식감을 넣었다.
“빵은 어려웠던 시절의 로망이었죠. 지금도 기억납니다. 학창 시절 몇 개까지 먹을 수 있나 하는 빵 내기를 하는 친구도 많았어요. 맛난 주전부리 하면 빵이었고, 그중에 단팥빵이 최고였죠.” 김학민씨의 마지막 회고담이다. 우리 기억의 끝자락에는 달콤한 단팥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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